한국인이 편애하는 ‘소프트 SF’


한국인이 편애하는 ‘소프트 SF’ <인터파크웹진>


한국에서는 소설 마니아라도 SF(공상과학) 소설에는 쉽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은 저급하다는 인식이나 SF 소설의 기반이 되는 ‘과학’은 어딘지 우리네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의견 등이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비호감은 ‘소프트 SF’라는 공상과학 소설 하위 장르로 국한하면 호감으로 급히 선회한다. 인문, 철학을 담아내고 미래를 상상하는 소프트 SF는 미래라는 상상의 공간을 통해 현실의 문제점들을 재조명하도록 돕기 때문에, 문학에서 잔재미보다는 삶의 통찰을 얻고자 하는 한국 독자들의 독서 욕구와 잘 맞아떨어진다.

소프트 SF를 거론하기 전에 그와 대비되는 하드 SF를 먼저 알아보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SF 소설은 다양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러 하위 장르를 포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드 SF는 용어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철저하게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학과 화학, 천체물리학 등이 수시로 등장한다. 실제로 뛰어난 과학자들이 소설을 쓰기도 한다.

한편, 소프트 SF는 ‘소셜 SF(Social SF)’라고도 불리는데, 사회학, 경제학, 정치경제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과 결합하여 주로 미래 사회를 상상한다. 하드 SF에 비해선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인 지식을 다룬다. 이 분야의 저명한 고전으로는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미래를 상상하며 그려보는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미래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영화는 이 소설들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4>는 1984년, 상상 속의 초강대국 오세아니아에서 벌어지는 전체주의적 지배를 묘사했다. 오웰은 1949년에 35년 뒤인 1984년의 사회상을 암울하게 그려냈다. 권력이 집중된 집단이 대중을 지배하고,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쟁상태를 유지한다,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 철저히 감시하며 사상의 진화를 막기 위해 언어를 도태시킨다.
 

 

  
<멋진 신세계>는 <1984>보다 먼저 쓰였다. 1932년 작인 <멋진 신세계>는 과학적인 상상력에서는 <1984>보다 몇 걸음 앞서 나갔다. 아이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유리병 속에서 길러지고 자신의 부모를 알지 못한다. 지능의 우열로 장래의 지위가 결정된다. 역시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개인들의 고민이나 불안은 신경안정제 한 알로 해소된다.


한국에서 소프트 SF의 독자층을 넓힌 장본인은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높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이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출간된 베르베르의 책들은 꺾일 줄 모르는 흥행 실적을 거듭해 왔다. 국내문학이 80년대를 회고하는 후일담이나 주로 ‘관계’를 다루는 내면에 침잠하고 있을 때, 베르베르의 책들은 외부 지향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무기로 하면서 술술 읽히기에 확실히 경쟁력이 있었다.



 




 

  

소프트 SF는 계속 진보한다. 올해 신작으로 <1984>의 오마주로 볼만한 <2058 제너시스>가 등장했다. <1984>와 유사하게 2010년 현재에서 48년 뒤를 내다보고 있으며, 뉴질랜드 섬에 새로운 공화국이 축조된다.  그러나 <2058 제너시스>는 <1984>, <멋진 신세계>의 미래상을 닮았지만, 진보가 인간 파괴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묵시론적 예언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2058년에는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강력해진 중국과 미국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무너지고 언론이 공포를 유포하면서, 대중은 음모론에 마음을 빼앗겨 이웃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결국, 태평양 영공에서 미국이 중국 항공기를 격추하면서 3차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작가는 인간과 로봇 간의 설전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이 인지나 지적 능력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로봇은 자신이야말로 진화의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흙은 세포를 창조하고, 세포는 다세포와 뇌를 낳았으며, 뇌는 언어와 관념(idea)을 만들었고, 관념은 사유하는 기계인 로봇을 낳았다는 것이다. 2010년도의 소프트 SF 소설은 인지과학과 진화론에 철학까지 담았다.


   
↑ <2058 제너시스>, 버나드 베켓(우)


소프트 SF는 소설로 읽는 미래학이라 말할 수 있다. 현실의 두려움은 미래를 먼저 들여다보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이때에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실을 파악하는 통찰을 제공하는 소설들은 지적인 독자들 생각의 요람이 될 만하다.


글 : 노경실(소설가

 


  출처 : 인터파크 도서 웹진


댓글

  1. trackback from: 인터파크직원ㅋ의 생각
    한국인이 편애하는 ‘소프트 SF’ 한국인이 편애하는 ‘소프트 SF’ <인터파크웹진> 한국에서는 소설 마니아라도 SF(공상과학) 소설에는 쉽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은 저급하다는 인식이나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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