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경찰, 두 얼굴을 가진 공권력의 어둠 <인터파크웹진>

악질 경찰, 두 얼굴을 가진 공권력의 어둠 <인터파크웹진>

 

 

얼마 전 어떤 조사에 따르면 공직자 중 경찰 공무원이 위법 행위를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경찰의 가장 큰 임무가 범죄 행위를 막고 법을 지키는 것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야 말로 법을 어기는 것에 대한 유혹이 가장 강렬할 것이다.

90년대 중반 경험했던 군대 시절을 떠올려봐도 사소한 군대 규칙을 가장 안 지키는 병사들은 군대의 경찰이라고 할 수 있는 헌병들이었다. 막말로 우리가 규칙을 어기면 헌병들이 잡아갔지만 헌병들이 규칙을 안 지키면 어지간히 큰 문제가 아닌 담에는 그냥 넘어갔다. 헌병은 서로 잡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조직은 이런 공권력에 의한 위법 행위를 막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조직 안에 내사 기구를 만들어 놓고 있으며 범죄 수사에도 검찰 조직과 사법 조직의 독립적 수사권한을 만드는 일종의 권력 분립을 통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은 법,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소위 ‘나쁜 경찰’은 존재해왔다.


대부분의 나쁜 경찰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서사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적으로 존재해왔다. <LA컨피덴셜>(1997)의 더들리 반장이나 <네고시에이터>(1998)의 프로스트 시경장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기묘하게도 이 두 영화에는 모두 ‘우리 편’ 형사로 케빈 스페이시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경찰 조직에서 명예롭게 출세한 이들이지만 범죄자들과의 암암리에 거래하는 두 얼굴을 가진 자들이다. 최근 나온 <체인질링>(2008)에서도 부패한 경찰 조직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활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쁜 경찰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이런 역발상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히트작이 강우석 감독과 설경구가 ‘강철중’이란 압도적 캐릭터를 뽑아낸 <공공의적>시리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포스를 발현한 작품은 단연 1편인 <공공의적>(2002)인데 이 영화에서, 특히 초중반부에 강철중이 보여주는 ‘나쁨’은 상당한 진폭의 매력을 보여준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특채로 경찰에 입문해 10년 동안 2계급 강등된 이 특이한 경찰은 본연의 임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행색 자체가 경찰이라기보단 거리의 불량배를 연상시키는 이 자는 일단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결근을 밥 먹듯이 하고 거리를 쏘다니며 노점상에게 ‘삥’이나 뜯어대는 이 자는 ‘보안관’이라기 보단 ‘난폭자’다. 범죄인에게 탈취한 마약을 밀매하고자 할 만큼 부패했으며 공직자의 윤리강령 따윈 신경도 안 쓴다. 그냥 누군가 맘에 안 들면 패버릴 뿐이다.

강우석 감독은 이전에도 <투캅스>(1994)를 통해 적당히 부패한 경찰을 보여준바 있다. 그런데 강철중이 <투캅스>의 형사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은 아예 스스로의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방기하는 단계로 진화했다는 것에 있다. <투캅스>의 형사들이 경찰 업무 과정에서 가능한 사적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라면 강철중은 아예 경찰 업무 자체를 방기해 버린다. 초반부의 그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시스템을 활용해 먹고 사는 자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아나키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제멋대로 활개치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무언가에 매여 사는 보통 사람들의 억압된 심리를 투사할 수 있는 반영물이란 것이다.


그런 그가 자기보다 훨씬 더 지독한 ‘악’, 소위 그가 작명에 따르면 ‘공공의 적’을 만나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다. 그런데 공공의 적과 맞서게 되는 이유도 그답다. 뜬금없이 십 수년 간 잊고 지내던 정의감이 솟아올랐다면 초반부에 보여준 그의 캐릭터가 어색했을 것이다. 그는 단지 비 오는 밤 잠복 근무 중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놈을 잡아 조지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 것뿐이다.

개인적 복수로 시작했던 수사가 진행되면서 친족 살해라는 천인공노할 범행의 진실을 만나고 나서야 그는 겨우 조금 변한다. 초반부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노점상에게 영화 말미에 이제 ‘형사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은 이제 간신히 경찰이란 사실을 인지하게 된 강철중의 자기 확인이라 하겠다.

하지만 강철중은 끝내 자신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나쁜 경찰에 대해 윤리적,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한 심각한 영화도 있다. 미국 영화의 대표적 독립 영화 작가인 아벨 페라라의 <배드 캅>(1992)이 바로 그렇다.

이 영화의 악질 경찰 ‘그’(하비 케이틀)는 강철중보다도 한 수 더 뜨는 타락한 경찰이다. 마약중독자이며 알콜 중독자인 그는 부인과 자식, 장모, 처제까지 데리고 사는 대가족의 가장이지만 그의 모든 관심은 스포츠 도박(덕분에 영화 내내 뉴욕 메츠와 LA 다저스의 챔피언쉽 시리즈의 중계가 그의 주변에서 흘러나온다)과 마약 밀매에 가 있다. 매매춘을 일삼고 가출한 소녀들을 직위를 이용하여 성추행하는 그에게 구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단지 돈 때문에 비행을 일삼는 여느 나쁜 경찰과는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계속 윤리적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유쾌하게 한탕 하는 악동이 아니라 자신의 악덕을 피부 깊숙이 새겨 넣고 있는 타락 천사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구체적 지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대강 뉴욕으로 추정되는(아벨 페라라는 뉴욕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린다) 도시 또한 더럽고 타락해 있다. 그는 본래 선한 자였을 것이나 타락한 도시에 내려와 함께 타락해 버린 것이다. 숱한 악행 속에서도 그는 끝없이 구원을 갈구한다.

여하간 강철중에게 ‘공공의 적’ 조규환이 나타났듯 그 앞에도 더 지독한 악행이 벌어진다. 바로 성당에서 10대 소년들이 수녀를 윤간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본래 천주교 신자였으나 종교의 부패를 탓하며 냉담자가 되었던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냉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이 사건을 외면하여 애써보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피해자인 수녀는 자신은 범인들을 용서했다며 증언을 거부하지만 그는 범인을 알게 된다. 타락한, 그러나 영혼 깊숙이 구원을 갈구하는 중년의 나쁜 경찰은 범인을 잡고 어떤 선택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그의 선택은 희생이며 그는 그 행위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아니, 얻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는 게 정확하겠다).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결국 나쁜 경찰을 내세운 작품들도 그들이 ‘좋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인간으로 세상을 살기란 사실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특히 큰 힘을 지니면 지닐수록 타락과 악덕의 유혹은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벤 삼촌(<스파이더맨>)의 말은 기억할 만 하지 않은가?



 
출처 : 인터파크 도서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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