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저 ㅣ 돌베개
   

한국전쟁사 연구의 현황
한국전쟁 연구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함께 연구의 고저가 형성되어온 대표적인 분야이다. 주요 참전국들의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가설과 이론이 제시되었던 1950년~1970년까지의 연구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련의 대외정책에서 찾은 ‘전통주의’ 시각과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에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은 초기 ‘수정주의’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이전 전통주의학파에서는 한국전쟁의 스탈린주도설과 소련·중국공모설이 지배적이었다. 수정주의 입장은 언론인들과 학자군을 형성해 한국·중국·베트남의 분단과 내전을 아시아민족주의 대 미제국주의의 대결에서 파생된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전쟁 개전에서 미국·남한의 개입과 책임을 거론하는 입장은 1952년 미국의 독립언론인이자 좌파수정주의자였던 스톤(I. F. Stone)으로부터 비롯되어, 1960년대의 콘데, 1970년대의 굽타·콜코 부부·시몬스를 통해 논쟁적으로 확산되었다.
1977년 미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에서 25년 이상 경과된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한국현대사와 한국전쟁 연구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문서들을 통해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과정은 물론 냉전형성기 미·소관계, 대중국정책, 대일본정책 등 주요 주제에 관한 미국측 정책 입안·결정·집행 과정이 드러났다. 1980년대 미국 자료에 근거해 출간된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인 저작이 바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 2권이다. 1990년에 출간된 2권은 1990년대 초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한 구소련 문서를 볼 수 없었던 자료적 제약으로 서술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당시 미국 학계가 도달한 한국현대사·한국전쟁 연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연구의 세번째 전기는 바로 러시아 자료의 공개 이후에 마련되었다. 1970년대 미국 자료의 공개가 냉전 형성에서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켰다면, 1990년대 소련 자료의 공개는 소련에게 상당한 책임 소재가 있음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문서 공개로 북한, 즉 김일성의 개전 주도 및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증명되었고, 중국의 역할 역시 부각되었다. 구소련 문서 공개 이후, 1990년에 들어 제시된 한국전쟁사 연구는 한편으로는 신전통주의적 경향을 보이거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주의·수정주의 같은 구분과 경계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쟁은 ‘형성’되었다
한국전쟁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오래되었고 학자마다 입장과 견해가 달랐다.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는 내전, 국제전, 국제전적 내전, 민족해방전쟁 등의 설이 제출된 바 있다. 전통주의적 견해는 소련과 스탈린에게 전쟁의 결정권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런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내전이 아니라 국제전이라고 평가했다. 신전통주의의 대표주자 윌리엄 스툭(William Stueck)이나 국내 학자 김영호를 들 수 있다.
반면 수정주의 견해가 등장한 이래 한국전쟁은 국제전이 아닌 내전으로 규정되었다. 내전설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한국 내의 국내적 요소와 한국 외의 국제적 요소가 모두 작용했지만, 기본적인 동력은 한국의 국내적 대립·갈등에 있었다고 보았다. 남한 빨치산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한 존 메릴(John R. Merrill)이 대표적인 학자로 거론된다. 커밍스도 전쟁의 내부적 기원·요인이 중요하며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지만 이미 해방 이후 혹은 1948년 이후 내부의 혁명투쟁, 내전, 소규모 재래전 등이 이날 전면적으로 확전된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나가이 요노스케(永井陽之助),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피터 로우(Peter ...Rowe), 제임스 매트레이(James Matray) 등은 한국전쟁을 1950년 발발 시점에서 이미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었던 ‘국제전적 내전’으로 보는 학자들이다. 이 책 또한 한국전쟁은 내전이나 국제전으로 발화했거나, 혹은 내전으로 발화해서 국제전으로 비화한 것이 아니라 1950년 발발 시점에서 이미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었다고 본다. 한국전쟁의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해방 후 미소의 38선 설정 및 한국분단, 양국의 대한정책·점령정책이었다. 군사전략·작전술·교리 등의 측면을 보더라도 한국전쟁이 내전이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3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피를 흘렸지만 전장에서 맞붙은 것은 소련·미국·중공의 군사전략이었으며, 남북한군 모두 대규모 군급 작전 계획을 수립할 능력도 전략도 부족했다. 한국전쟁의 성격은 이 점에서 더욱더 명확해진다.
이 책이 택한 전쟁의 ‘형성’이라는 용어는 1949~1950년 시기의 남북의 적대적 동화과정과 여기에 미친 미소의 규정력,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이 용어는 기원과 배경·원인처럼 익숙하지 않지만, 전쟁은 특정 시점, 특정 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창조·결정된 산물이 아니라 미소·남북·좌우의 대립과 길항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이 책의 기본 입장을 드러내준다. 한국전쟁은 국내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이 1945~50년의 기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미소·남북·좌우라는 3층위의 갈등을 한반도 내에 형성했고, 이는 전쟁의 배경·기원·원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연속적이며 유기체적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형성’은 전쟁의 기원·배경·원인·요소라는 이론적 분석의 단위를 현실의 구체성 속에서 종합한 것으로, 전쟁의 구조적이며 입체적인 주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전쟁 연구서!
한국전쟁 연구는 오랫동안 국제 학계에서 주로 국제정치·외교학의 주된 탐구대상이 되어왔다.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도 이와 다르지 않아 정치학, 사회학 분야에서 전쟁의 발발과 기원, 학살 등에 관심을 둔 연구 성과들이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사 연구의 기초에 해당하는 북한군의 전투 서열, 병력 규모, 대호 등도 아직까지 연구되지 않았음을 보면 한국에서의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과 편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전쟁 연구서인 이 책은, 역사적 사료를 따라 한국전쟁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살펴보는 데 연구의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전통주의, 수정주의 혹은 신전통주의, 후기수정주의 등의 이론적 배경보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기본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기존 연구들이 비판적으로 검토되며, 전쟁사 연구의 기본에 해당하는 1948년 이래 남북한군 병력 현황, 1948~50년 38선 충돌 현황 등이 정리된다.
대부분의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전쟁의 결정 시점, 결정 주체, 스탈린·김일성의 관계 등에 집중한 나머지 1949년 자료를 정확히 해독·활용하지 못했다. 반면 이 책은 구소련 문서 중 1949년 38선 충돌 및 남북관계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폭넓게 활용했다. 또한 공식 전사류의 서술과 구소련 문서 등과 비교함으로써, 1949년 일어났던 38선 충돌 사태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구체적이고 세밀한 사건의 인과관계와 전말을 복원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적 특징 가운데 큰 강점은 북한 노획문서, 그 가운데 1990년대 공개된 신노획문서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점이다. 북한 노획문서를 가장 먼저 인용한 것은 브루스 커밍스였지만 그는 신노획문서는 검토하지 못했다. 이 연구에 등장하는 신·구노획문서는 대부분 처음 소개되는 것들로, ‘1947년 이래 소련의 웅기·청진항 30년 조차 관련 기록’ ‘옹진을 공격한 북한군 관련 문서’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의 폭사 관련 문서’ 등은 개별문건만으로도 중요한 기록들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소련·북한 문서를 치밀하게 교차·분석해,
1945~50년 간 한국전쟁을 형성해온 모든 과정을 치밀하게 역추적!
지금까지 미국·소련·북한 자료 중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서술한 한국전쟁사는 있었지만, 이들 3개국 자료를 치밀하게 교차·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는 한국전쟁 형성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충돌의 세부적 측면들을 복원하는 데서도 그러했다. 이 책은 1980년대까지 알려진 미국 기록에 1990년대 이후 공개된 구소련 문서와 북한 노획문서를 결합시킴으로써, 1949~50년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과 북한의 전쟁 계획 결정·수립·실행 및 한국·미국의 한국전쟁관 성립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이용 자료는 엄격한 자료 비판을 선행했다. 남북미소의 주장과 입장은 개전 초부터 엇갈렸다. 따라서 저자는 여러 사료를 비교 분석하고 사건·사실의 객관적인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무시되었던 사건·사실·경과 등이 재조명되며, 남침유도설의 핵심인 ‘해주공격설’에 관한 해묵은 논쟁을 끝낼 분석이 제시된다.
이 책의 핵심 관심사는 1949~50년 시기의 38선 충돌 문제이다. 저자는 38선상에서 벌어진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 좀더 미시적으로 접근하자면 1949년 군사적 충돌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분석한다. 38선 충돌에 관한 기존 연구는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38선 충돌이 한국전쟁과 무관하다는 견해이다. 이는 한국 공식 전사의 입장이며 전통주의적 견해에 따르는 대다수 연구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38선 충돌이 한국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전쟁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고 다만 1949년의 38선 충돌이 1950년 6월 확대, 재현되었다는 수준에서 그쳤다.
전쟁의 형성 과정에서 1949년은 가장 중요한 위상을 점했다. 49년의 충돌은 1948년과 달리 정규군이 동원되었으며, 때에 따라서 연대급 병력까지 동원되었고 중화기가 사용된, 실질적인 교전행위나 다름없었다. 이 책은 1950년의 축소판과 같았던 1949년 남북한의 38선 충돌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한국전쟁의 형성 과정을 역추적해낸다.
구소련 문서를 통해 전쟁을 계획·결정·실행한 북한·소련의 정책 결정 흐름들은 종합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특히 저자는 북한군이 수립한 전면 공격용 작전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자료를 동원해 가능한 수준까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선제타격계획’의 실체는 물론이며, 북한군이 수립한 총참모부 수준의 작전 계획과 명령→ 사단급→ 연대급 이하의 명령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출처 : 인터파크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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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trackback from: Hans의 생각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저 ㅣ 돌베개 한국전쟁사 연구의 현황 한국전쟁 연구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함께 연구의 고저가 형성되어온 대표적인 분야이다. 주요 참전국들의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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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한국전쟁(6.25 전쟁) 59주년...
    먼저 전쟁에서 숨을 거두신 모든 이들에게 묵념을... 전쟁없는 저 세상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6.25 전쟁이라는 것은 사실 여러가지로 의미가 큰 전쟁이었다. 물론 당사국인 우리는 국토가 완전히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북한 지역 역시 미군의 맹폭으로 인해 말 그대로 전 국토가 허허벌판이 되었다. 위키 백과 : 한국전쟁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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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콜디스트 윈터
    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저 / 정윤미, 이은진 역 ㅣ 살림 ㅣ THE COLDEST WINTER 오늘날까지 우리 현대사의 블랙홀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진실을 조명한 가장 탁월한 보고서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중 한 사람이며 뉴저널리즘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마지막 유작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사력과 저널리즘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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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북한 스커드 미사일 4발 발사,,, 남한이 사정권인 단거리 미사일,,,
    북한이 또 미사일 발사했네요,,, 방금전 12시즈음에도 발사했다는군요 어제~오늘:: 총 4발,,, 사거리가 500Km정도 된다는 스쿼드 미사일 2006년에도 미국독립기념일에 맞춰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데,,, 이번에도 미국독립기념일에 맞춰서 발사된것,,, 왜이렇게 도발을 하는지 나원참,,, 미사일 한발 한발 쏠때마다 긴장타는 우리의 군인들,,, 필자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전쟁을 목적으로 미사일을 쏜다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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