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로 건너간 우리 영화의 현주소 <인터파크 도서 웹진>

어느 한가한 주말, TV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는데, 이미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의 영화를 할리우드 신작영화라며 소개해주는 것 아닌가. 거울과 살인을 코드로 한 공포영화였다. 찾아보니 한국영화인 <거울 속으로>를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사, <미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큰 줄거리만을 따서 만든 거라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 결말은 다르지만 어쩐지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2003년 <조폭마누라>를 시작으로 할리우드는 20여 편의 한국영화 리메이크 판권을 사갔다. 하지만 이 중에서 실제로 제작되어 개봉한 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며, 흥행 성적도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영화 히트작들을 리메이크하는 만큼 화제성을 등에 업고 국내에서만은 흥행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마저 번번이 빗나갔다.

위에서 언급한 할리우드 영화 <미러>는 미국에서는 괜찮은 반응을 얻었지만 역수출된 국내에서는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주연한 <시월애>를 리메이크한 <레이크 하우스>는 할리우드 스타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을 내세웠음에도 약 14만 명의 관객만을 동원했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영화 중, 국내 최대 히트작이었던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판 <마이 쎄시 걸>은 미국에서는 개봉조차 못하고 DVD로 직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엽기적인 그녀>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개봉했다가 1만 452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심지어 난 개봉한 줄도 몰랐다!) 어설픈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부진했던 역사 때문에 <장화, 홍련>의 리메이크 <안나와 알렉스 : 두 자매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던 것이다. 심리적 공포에 주력한 원작에 비해 리메이크작은 계모의 정체를 밝히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를 띠고 있다. 할리우드식으로 새롭게 태어난 <안나와 알렉스 : 두 자매 이야기>가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의 부진을 씻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4월 초 개봉했던 이 영화도 썩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다.


이렇게 할리우드로 넘어간 영화들이 할리우드 자본력이 만든 특수효과에 한국 관객의 정서에 부합할 만한 대중성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영화만의 매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들은 내게 그저 또 하나의 할리우드영화일 뿐이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들은 뭐가 있을까? <추격자>가 최근 워너브라더스와 100만 달러에 판권 계약을 맺었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소문이 들려온다), 김윤진 주연의 <세븐데이즈>는 미국의 서밋 엔터테인먼트에 100만 달러 판권 계약을 맺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역시 유니버설사와 60만 달러 판권계약을 체결했으며, 바로 얼마 전에 안병기 감독의 <>의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되었다.

특히 <폰>의 리메이크는 단순 판권 판매가 아닌 공동 제작으로서 한국영화 리메이크 시장에 새로운 활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폰>의 리메이크가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원작 감독에 의한 한국 로케이션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촬영 장소로서의 이익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던 원작만의 매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침체된 국내 제작 환경에도 또 다른 가능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선 리메이크 작품들과 달리 뜻 깊은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영화 <쉘위댄스>가 할리우드에서 리차드 기어 주연으로 만들어진 걸 보고 배가 아팠던 과거가 떠오른다. 물론 이렇게 리메이크되고 있는 영화의 수가 아직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현재 한국영화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속스캔들>의 차태현 역할을 휴 그랜트가 연기할, 그 날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젠 배 안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나도 땅 사면된다.



글/사진 : 인터파크도서 기자단 1기 신영인

출처 : 인터파크 도서 웹진

댓글

  1. trackback from: 스승의날영화추천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나에게도 항상 떠오르는 선생님이 한 분이 계신다. 학창시절 여고생의 로망은 뭐니뭐니해도 총각선생님일 테지만, 나는 갓 결혼한 선생님을 참 좋아했었다. 수업시간이 되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작은 먹거리를 교탁 위에 살포시 놓아뒀었다. 내가 선생님을 좋아했던 만큼 과목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지구과학담당이셨던 그 선생님의 최고 팬이었다. 학창시절에 막연히 좋아지는 선생님이 생기는 것이..

    답글삭제
  2. trackback from: 스타트렉 새로운 SF 연대기의 준수한 서막
    초등학교 때 미군 방송인 AFKN(지금의 AFN)을 곧잘 봤다. 몇 안되는 한국 채널들이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AFKN은 하고 있었고, 심지어 끝나서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쏼라 쏼라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AFKN에서 흘러나오는 이국적인 볼거리들은 (내가 싫어하던 미식축구와 레슬링 중계를 빼면) 요즘 애들처럼 학원 갈 일도 없는 초등학생의 넘쳐나는 여가 시간에 꽤 괜찮은 벗이 돼 준 셈이다. 당시(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AFKN에서..

    답글삭제
  3. trackback from: 할리우드로 건너간 우리 영화의 현주소
    어느 한가한 주말, TV로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는데, 이미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의 영화를 할리우드 신작영화라며 소개해주는 것 아닌가. 거울과 살인을 코드로 한 공포영화였다. 찾아보니 한국영화인 <거울 속으로>를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사, <미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큰 줄거리만을 따서 만든 거라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 결말은 다르지만 어쩐지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2003년 <조폭마누라>를 시작으로 할리우드는 20여 편의 한..

    답글삭제
  4. 한국작품이 리메이크 되면 웬지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긴 하는데...괴물 만큼은 할리우드가 만들어도 한국판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아요~ 봉감독본좌님의 유머센스가 빠지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요^^

    답글삭제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