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왕 캄비세스 - 산채로 사람의 가죽을 벗기다 <인터파크 도서 웹진>

페르시아왕 캄비세스 - 산채로 사람의 가죽을 벗기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사형당할까요?

올해 초, 엽기적인 연쇄살인으로 전국을 충격에 몰아 넣은 ‘강호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그의 끔찍한 범죄에 경악했고 이는 곧바로 ‘사형제 존폐 논란’을 가져왔지요. 언론 보도를 통해 강호순을 비롯 유영철, 정남규 등과 같은 연쇄살인범들의 범행 동기, 과정들을 대하면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 말도 나오질 않습니다.

또한 구속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뻔뻔스러운 태도는 사실 사형만으로도 모자란다는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마녀의 몸에 난 점이 악마가 들어간 입구라고 생각한 나머지, 점에 꼬챙이를 꽂아 몸 안을 들여다 보고 싶어했던 중세의 이단 재판정처럼 이들 살인범들의 머리를 열고 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강호순을 비롯 유영철, 정남규 등의 연쇄살인범들의 실제로 사형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1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 이기 때문입니다. 강호순이 잡히자 인터넷에서는 ‘사형제의 조속한 집행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사형은 다른 이름의 살인일 뿐’이라며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습니다. 범죄자들을 단죄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수단은 정말 사형제가 유일한 것일까요?

사형(death penalty. capital punishment)이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제거시키는 형벌입니다. 사형은 형벌 가운데 가장 중하므로 극형(極刑)이라고도 하고, 생명 박탈을 그 내용으로 하므로 생명형이라고도 하죠. 사형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형벌로, 고대와 중세 때는 사형이 주된 형벌이었죠.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가장 잔혹한 최후의 형벌, 사형. 사형의 집행 방법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어 영국에서는 교수형(hanging), 프랑스의 단두대(guillotine)에 의한 참수(斬首), 미국에서의 전기 의자, 또는 가스 살(殺), 우리나라의 사지를 찢는 참형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것으로는 산사람의 피부를 벗기는 소위 ‘가죽 벗기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산채로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형벌’, <황금 전설>에 의하면 가톨릭의 성인 성 바르톨로메오는 예수가 승천한 후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도달해 그 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아스티아제스라는 왕에 의하여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산 채로 칼에 의해 전신의 살가죽이 벗겨지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지는 등 갖은 혹형을 당하였죠.

페르시아왕 캄비세스는 부패한 판사 시삼네스(Sisamnes)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겨 죽인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자들은 배를 갈라 서서히 내장을 꺼내 죽였고, 범죄를 저지른 자들, 즉 도둑질을 한 자는 손목을 베었고, 거짓말을 한 자는 혀를 베었으며, 살인을 한 자는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고 합니다.


캄비세스 2세 Cambyses II
~ 기원전 522년경 죽음


캄비세스 2세는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로 아버지 키루스 2세와 아케메네스 가문의 딸, 카산다네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530년 8월 선왕 키루스 대왕이 동쪽의 정벌에서 죽자, 제국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기원전 522년까지 나라를 다스렸지요. 그는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정복했는데 이집트는 선왕 키루스가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제국이었습니다. 캄비세스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파라오 프사메티쿠스 3세를 처형한 뒤 스스로 이집트의 황제 즉 파라오가 됩니다. 이집트에 머물면서 에티오피아와 아몬의 오아시스, 그리고 카르타고에 대한 원정에 나섰던 그는 시리아에서 자신이 죽인 아우 바르디야를 사칭한 이가 일으킨 반란소식을 듣고 페르시아로 귀국하던 도중 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 혼란을 수습하고 다리우스 1세가 왕위에 올랐죠.


캄비세스왕의 재판


사실 이러한 그의 일대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캄비세스 왕의 재판>으로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캄비세스 왕은 다른 사람들의 죄보다도 재판관의 죄에 대해서는 가장 가혹하다고 할 수 있는 산사람의 껍데기를 벗기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당시 재판관이었던 시삼네스(Sisamnes)가 평결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 게 되자 그의 죄에 대한 형벌로 이러한 끔직한 벌을 내린 것이죠. 즉 일반의 범죄보다도 더 무겁고 가혹한 형벌을 내림으로써 부패한 법관과 관리들에게 일대 경종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가죽 벗기기가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있으니, 네덜란드의 화가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입니다. 제라르 다비드는 네덜란드의 초기 르네상스를 빛낸 뛰어난 화가로, 그가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은 왕이 부패 재판관에 대한 형벌로서 가장 가혹한 산채로 가죽 벗기기를 명하여 이를 집행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제라르 다비드는 고향인 브뤼헤의 ‘정의의 홀’ 의 위촉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는데요, 당시 부패한 법관들이 많은 것을 탄식한 ‘정의의 홀’은 부패한 재판관이 비참하게 처형되는 장면을 그림으로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일대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처형대 위에 발가벗은 부패 재판관을 결박하고는 4명의 형집행인이 산사람의 피부를 벗깁니다. 오른쪽의 집행인은 칼을 입에 물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왼쪽 발목에서 뒤꿈치 언저리의 날가죽을 벗기고 있고, 다른 두 형집행인에 의해서 양팔의 껍질이 벗겨지고 또 다른 한 명의 형집행인은 가슴을 가르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끔찍한 그림은 처음입니다.

제라르 다비드가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 ll>를 보면 시삼네스의 벗겨진 가죽이 재판관의 의자에 깔려 있습니다. 캄비세스 왕은 부패로 처형된 시삼네스 재판관의 아들을 다시 재판관으로 임명하여 자기 아버지의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게 하였다고 하는데요, 이 그림은 처형 후 벗겨진 시삼네스의 가죽을 평소에 그가 앉아있던 법관의자에 깔게 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생피부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도록 잔인한데 그것을 가죽으로 하여 의자에 깔게 하고, 그 아들을 그 위에 앉게 하였다는 참으로 잔인하기 끝이 없는 형벌입니다. 하지만 이을 통해 다시는 그런 부패된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엄하고 강한 통치자의 단호한 결의를 나타낸 것이죠. 그리고 후대에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그림을 법정에 걸어 판사들로 하여금 항상 경계하게 하여 경고하게 한 것입니다.

 

출처 : 인터파크도서 웹진 북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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